함민복 시인이 우리 동시대의 시인이라는 것이 사뭇 뭉근하다. 그의 시를 읽을 때마다 가슴속에 스멀스멀 스며드는 감정의 편린은 아련한 슬픔과 그리움, 이제는 먼 옛날의 일로 여겨지는 가난, 그리고 스스로 위안하며 뒤돌아서는 자조 (自嘲)의 껄껄 거림이다. 함민복 시인에 대해 조금은 깊이 들어가 그를 천착해보고자 한다.
1. 시를 삶처럼, 삶을 시처럼 쓰는 시인
함민복의 시는 항상 낮은 곳으로 향한다. 시선이 낮다는 것은 시인으로서 한평생 고개를 숙였다는 뜻이다. 한낱 미덕의 서사가 아닌, 삶의 조건과 시대의 윤리를 동시에 감당해야 했던 존재로서의 시인이, 고개를 숙이지 않으면 마주할 수 없는 세계가 있었음을 그는 일찍이 알아차린 것은 아닐까. 그에게 고개를 숙이는 행위는 존재의 연약함과 가난, 그리고 삶의 본질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는 자세일 것이다.
“시는 감정의 응고체가 아니라, 감정의 순환 장치여야 한다.”
— 함민복
1962년 충북 충주에서 태어나, 한국사회의 압축 성장기를 어린 시절로 통과한 함민복은 1988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하며 문단에 진입한다. 그러나 그의 시적 생애는 그 해보다 더 오래된, ‘가난의 언어’ 속에서 이미 잉태되었을 것이다. 그는 서울에서 고학생으로, 신문 배달부로, 시사만화 잡지사 직원으로 일하며 ‘글쓰기 이전의 노동’을 성실히 살아낸 시인이었다. 그리고 이 경험이야말로 함민복 시의 핵심 정서인 ‘존재의 연약함에 대한 연민’을 낳는 자궁이었을 것이다.
2. 『선천성 그리움』
사람 그리워 당신을 품에 안았더니
당신의 심장은 나의 오른쪽 가슴에서 뛰고
끝내 심장을 포갤 수 없는 우리
선천성 그리움이여.
하늘과 땅 사이를 날아오르는 새떼여
내리치는 번개여
‘그리움’은 단순한 감정만은 아니다. 결코 맞닿을 수 없는 거리, 존재의 조건 자체에서 비롯된 선천적인 결핍이다. "심장을 포갤 수 없는" 우리 - 그 거리감은 사랑일 수도, 타자일 수도, 신일 수도 있다. 이 시는 결국 가까이 있지만 닿을 수 없는 모든 존재들에 대한 애틋한 절규이다. 우리는 점점 더 서로에게 닿을 수 없다. 심지어 사랑도, 관심도, 온전하게 포갤 수 없다.
3. 『섣달 그믐』
어머니를 다려 먹었습니다
맛이 없었습니다
고작 두 줄. 그러나 이 짧은 시는 ‘가난’과 ‘죄책감’, ‘소모된 사랑’이라는 거대한 테마를 통과시킨다.
4.『긍정적인 밥』
詩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 생각 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 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긁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시집 한 권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을 따뜻하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시인. 그의 시는 ‘자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스스로를 낮춤으로써 독자를 위로하는 따뜻함이 공존한다.
5.『소스라치다』
뱀을 볼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란다고
말하는 사람들
사람들을 볼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랐을
뱀, 바위, 나무, 하늘
지상 모든
생명들
무생명들
그의 시와 글은 무척이나 소박하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기교와 꾸밈없이 그저 직관적이다. 동시 (童詩)에 가까운 천진함과 소박함과 어수룩함을 지니고 있다. <소스라치다>의 시 또한 그렇지 않은가. 소스라치게 놀라는 사람을 목격하고, 더 소스라치게 놀라는 지상의 모든 생명 그리고 무생명들. 관점과 시각의 전환은 또 다른 의미를 전달한다.
6. 함민복은 OO시인이다?
- 슬픔을 정제하지 않고 증류하는 시인
- 사람을 품듯 단어를 다루는 시인
- 설명보다 어루만짐을 택하는 시인
- 눈물의 맛까지 책임지는 시인
함민복의 시는 삶의 말단에서 시작됩니다. 화려한 수사는 없고, 대신 덜어내고 또 덜어낸 언어만이 남습니다. 그렇기에 그의 시는 오래 남습니다. 시를 잘 모르더라도, 함민복의 시는 어떤 마음의 날씨를 꿰뚫는 힘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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